
병원에서 치료를 시작한 아이들의 70-80%는 치료에 반응을 하기 때문에 이전에 했던 산만한 행동부터 시작해서 감정, 욕구,행동, 생각조절의 문제가 좋아집니다. 힘든 상황을 참을 수 있으며, 하고 싶지만 참을 수가 있게 됩니다. 선생님의 권유해서 치료를 시작했다면 학교, 또는 유치원 선생님은 자신의 권유한 치료가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엄마에게 괜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있고 정상적인 아이를 문제가 있다라고 치료를 권유해서 치료가 효과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때문에) 아이의 변화를 유심히 관찰하게 되고, 치료를 모르는 선생님은 아이의 변화에 대해 놀라와 하고,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통하여 엄마에게 아이의 변화를 칭찬해 주면, 매일 문제가 있다는 전화를 받은 엄마는 비로소 두발 뻗고 잠을 잘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런 아이가 집에 와서 엄마에게 이렇게들 말합니다. “엄마, 매일 산만해서 선생님에게 혼나는 애가 있어” 또는 “엄마 오늘 누가 나를 귀찮게 놀렸어, 싫다고 하는데 계속 놀렸어, 옛날에 내가 했던 것처럼 말야” “오늘 000이랑 000이랑 싸웠어, 개네들은 매일 싸워” “오늘 선생님이 내가 가장 훌륭한 학생에 해당된다고 애들 앞에서 말하는데 000이가 아니라고 울었어” “000은 왜 그렇게 말을 안 듣나 모르겠어, 짜증나, 공부시간에 자기도 해” 이런 아이의 말속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아이는 이제 다른 아이들을 관찰할 수 있는 눈이 생긴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초 4이후는 이런 시각이 생긴다고 말씀드렸지만, 좀더 어린 나이에서 이런 능력들이 아예 없다가 갑자기 초 4때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이의 나이가 초 2 이후라면 심심치 않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만 하려고 했던 아이가 다른 아이들의 행동, 표정, 교실의 상황,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의 문제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고 그것을 엄마에게 와서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간혹 ADHD 아이들이 사회성이 낮다고 하지만 사회성 능력이 낮은 것이 아니라 안 보고, 자기 것만 하기 때문에 힘들다고 봐야합니다. 그러기에 ADHD 치료는 아이들의 조절능력뿐만 아니라 사회성에도 도움이 됩니다. 두번째 아이의 변화중에 하나는 학교에서 있었던 상황을 말로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학교상황에 대해 큰 문제가 아니면 언어적 표현이 거의 없었습니다. 엄마가 물어보지만 대부분 그냥, 몰라, 그냥그랬어 등과 같은 의미의 대답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이유는 간단히 말하면 귀차니즘, 또는 기억이 안남, 또는 자기 할 일을 놓치기 싫음 등입니다. 이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위와 같은 이유의 가장 주된 원인은 바로 집중력 결여입니다. 관찰을 하지도 않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도 않고, 자세히 설명하기도 어렵고, 생각도 하기 싫고, 집중을 해야 되는데 안했기 때문에 기억도 나지도 않고 그래서 넘어가는 것입니다. 집중력이 좋아졌기에 학교생활이나 어느 특정상황에 대해 자세히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아이의 반에는 아직도 아이와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애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ADHD의 유병율은 각 연구마다 차이가 있지만 3-14%정도 됩니다. 이를 간단히 10%라 생각한다면 한 반 아이들 중에서 2-3명 정도 아이의 같은 문제인 조절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애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 아이들이 아직도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을 힘들게 괴롭히고, 선생님에게 혼이 나고 있고, 다른 아이들의 학교수업권리를 방해하고, 다른 아이들을 방해하고 빼앗고, 놀리고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아이들중에는 어느 병원에선가, 또는 학교 상담실, 또는 위센터, 또는 상담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여러가지 이유에 의해서 효과가 없기 때문에 증상이 나타난다고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부모가 인지를 했어도, 선생님으로부터 권유를 받았어도, 다른 아이의 부모로부터 전화를 받았어도, 아니면 정말로 학폭에 걸렸어도 치료를 받지 않는 아이들일 것입니다. 어느 연구에 의하면 문제가 있지만 치료를 받지 않는 아이들이 80-90%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모두다 행복해지는 그날까지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치료받고 있는 아이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아이들이 학교는 재미있고, 갈만하고, 즐거운 장소여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이를 방해하고 힘들게 합니다. 그 아이들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비슷한 상황을 연출하면 그 아이들에 대한 반응은 부정적일수밖에 없습니다. 이 아이들도 적당한 치료를 받게 하고 즐거운 학교나 인간관계를 이룰 수 있게 해야 합니다.
ps : 모두가 학교에서 행복해지는 그날까지라는 말은 보통은 공부로 힘들어하는 아이들, 또는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이 사용했는데 얼마 전 보수성을 가진 신문의 사설에서 수능시험의 점수로 줄이 세워지고, 창의성과 개성을 존중하지 않는 현실의 교육을 탓하는, 약간 진보적 성향의 글이 있었고, 여기에서도 비슷한 언조의 내용이 있었습니다. 공부만 강요하는 공부만 하고 있는, 힘들게 책과 씨름하고 있는, 고등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머리 좋은 애들이 의대만 가서 맹목적이고, 비창의적인 행동만 한다고 의사들 집단을 매도하는 듯한 그런 글이지만 그래도 글의 방향은 모두가 행복해지려면이었습니다. 저와 생각의 방향은 다를 수 있지만 어찌되었든 모두가 행복해지려면 치료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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